눅 9:46~62

by God'sShadow posted Feb 21,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9:46~62

 

오늘의 본문은 바로 예수님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본문입니다.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은 크게 누가복음 957절부터 62절까지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를 따르려면이라는 커다란 주제 속에서 읽어져야 합니다. 이 주제 속에 나타나는 사람은 모두 세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던 세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 사람의 경우가 각각 다른 이유로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1. 머리 둘 곳 하나 없는데... /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예수님은 인자는 머리 둘 곳 없다는 말씀을 통해, 우리도 이 땅에서 더 많이 누리고, 더 많이 가지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 이 땅이 전부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축복이 있음을 기억하고, 하루 하루 자족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머리하나 둘 곳 없는데하는 정신은 오늘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에게 만족을 가져다줍니다. 우리의 불만을 해소해 줍니다. ‘인자는 머리 둘 곳 하나 없었는데라는 정신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오늘 우리가 가진 것이 참으로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에게 인자는 머리 둘 곳 하나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바로 명예와 안락과 평안만을 추구하는 정신을 가지고서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음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을 통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이 사회에 존재하는 머리 둘 곳 하나 없는사람들을 향한 섬김의 삶을 살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가난과 고난과 비난의 3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머리 둘 곳 하나 없는데라는 예수님의 정신을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산다는 것은 평생 가난하게 살 준비, 고난 받을 준비, 비난 받을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말은 전문 목회자나 사역자들에게 주어지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따르려는 사람이라면, 여기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이렇게 실천할 수는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세상을 위해, “1. 조금 불편하더라도 2. 조금 덜 벌어도 3. 조금 느리더라도이렇게 실천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라면 그리고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참으면 안 되겠습니까? 우리 모두 함께 잘 살아가는 공동체 건설을 위한 것이라면 조금 덜 벌게 되는 상황에 만족하며 살아가면 안 되겠습니까? 약한 자들도 함께 갈 수 있도록 조금 느리게 가면 안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머리 둘 곳 하나 없이 살아가셨는데 우리는 좀 불편하더라도, 조금 덜 벌어도 그리고 조금 느리게 살아 갈 수 없는 것입니까?

 

 

2.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을... / 핑계를 넘어서

 

이어지는 두 번째 사람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이 길을 가다가 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에게 나를 따라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주님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하여 주십시오답변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매정하게 그것을 거부합니다. 지금 따르지 않으면 그만 두라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어찌 보면 아버지를 장사지내겠다는 인간의 도리를 거부하는 비인간적인 모습이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실지로 기독교 신앙을 잘 모르는 분들은 이 구절을 들어 기독교가 인륜도 무시하는 종교라고 공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들의 공격이 본문의 해석을 그런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의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나오는 잘못된 것입니다. 오해를 살만한 말씀일지 모르지만, 주님은 이 말씀을 영적인 의미에서 하셨습니다. 우선,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의 세계에서 돌아서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핑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몇몇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예수님의 제자를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한 말 아버지의 장례를 치룬 후에 따르겠습니다.’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어떤 요청을 거부할 때 사용하던 상투적인 어귀라고 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바쁜 게 조금 지나면 하겠습니다.’라는 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할 때 우리의 머리에 떠오르는 상투적인 핑계나 동기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래서 못하고 저래서 못하고 우리에게는 늘 아버지의 장례나 치른 후에 라는 구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진정 우리의 생애를 의미 있는 생애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상투적인 그리고 수많은 핑계거리들을 이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 장례를 지내게 하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첫째는 일상적인 핑계거리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잘못된 종교적 습관과 형식을 극복하여 내면의 깨끗함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3. 손에 쟁기를 잡은 사람은... / 미련을 버리라

 

마지막, 세 번째 사람,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 쟁기를 잡고 뒤돌아 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안 식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게 해 주십시오예수님을 따르고 싶기는 한데 뒤에 두고 떠나는 것이 너무나도 아까워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 사람을 향하여 예수님을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자신이 가진 것에 얽매여서 뒤를 돌아다보면 하나님의 나라를 향할 수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손에 쟁기를 쥐어 주셨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좋은 삶의 밭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노동의 밭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공동체의 밭이 있습니다. 그리고 손에 쟁기까지 쥐어 주셨습니다. 이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제 과거로의 향수는 버리고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는 미래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앞을 향하여 나아감으로서 예수님의 제자 됨에 성공하여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우리들과 영성 공동체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