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1:37~54 주님의 책망

by God'sShadow posted Feb 2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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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예수께서 단순히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책망하시기 위해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책망을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우리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워지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어떠한 모습을 책망하셨습니까?

 

 

1. 첫째로 악독이 가득하니 : 겉과 속이 다른 신앙

 

본문 39절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여기의 악독'악한 자'를 뜻하는 포네로스에서 온 단어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순결성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중심은 욕심이 많고 악한 자인 것을 표현해 주는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겉뿐만 아니라 속도 창조하셨으며 겉뿐만 아니라 속도 정결케 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속이 더러우면 겉을 아무리 치장한다 해도 결코 깨끗해질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겉만 깨끗하게 포장하면 속의 악독이 감추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어리석음을 버리고 속사람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해지고 새로워지시기 바랍니다.

 

 

2. 둘째로 사랑은 버렸으니 : 사랑 없는 형식주의

 

본문 42절입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십일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십일조를 종류대로 드렸습니다. 그로인해 율법의 완전한 준수자라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물론 신앙의 외적인 표현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표현은 그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정신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십일조는 드리지만 정작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저버렸습니다. 그러기에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음과 정성이 없는 예배와 헌물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형식에만 치우치는 종교 행위는 오히려 하나님께 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모든 행위는 가증한 것이요, 위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책망을 들으면서 사랑으로 모든 것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3. 셋째로 문안만 기뻐하니 : 교만

 

본문 43절입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이러한 행위는 모두 사람들로부터 높임 받고 존경 받을 만한 것이 자기에게 있음을 과시하는 것으로서 바리새인들은 언제나 습관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의 특권의식은 우월의식으로 변했고, 어떤 자리에서도 우월의식에 합당한 처우를 당연시 했고, 스스로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행동은 교만에서 온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기도할 때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네거리에서 큰 소리로 길게 기도했습니다. 구제할 때도 나팔을 불면서 구제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옷 술을 길게 달았습니다. 상석에 앉기를 좋아했고, 사람들이 찾아와 문안해 주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무덤을 평토장했습니다. 봉을 세우지 않고 다른 땅과 같은 높이로 묻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덤인 줄 모르고 밟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평토장한 무덤임을 알리는 나무나 돌을 세우고 거기에 일 년에 한 번씩 회를 칠했습니다. 그러나 회가 벗겨지고 세워놓은 돌이 넘어지면 무덤을 분간 할 수 없게 됩니다. 밟을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문제는 무덤인 줄 모르고 밟으면 7일간 부정하게 되어 예배도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바로 평토장한 무덤과 같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평토장한 무덤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을 부정하게 만드는 장본인이라는 것입니다. 내면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한데도 겉으로 볼 때 경건해 보이고, 신앙이 좋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람들의 칭찬 받는 일에 만족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위선이 습관화된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뿐 아니라 백성들까지도 그 위선과 부패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무지함이 오히려 위선과 외식자체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기에 책망한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신앙생활의 타성과 습관화로 인해 가까이 오는 사람들을 모두 썩게 하는 존재인 것은 아닙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이 새롭게 믿으려는 초신자들에게 본이 되고 있습니까? 그들로 하여금 무덤에 빠지게 하는 평토장한 무덤 같은 존재는 아닙니까? 나의 신앙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 없이 살아간다면 바리새인이며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입니다. 죽은 것에 회칠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예수의 책망을 기억하고 신앙의 형식만 있고, 그 내용과 열매가 없는 빈껍데기와 같은 신앙생활을 청산하시기 바랍니다.

 

책망에 잘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책망을 받았다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책망 받을 일이 없는 완벽한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자람을 받아들이며 책망을 들을 때 감사로 여기는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네 속에 악독이 가득하느냐? 어찌하여 네 속에 사랑이 없느냐? 어찌하여 네 속에 교만이 가득하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책망을 통해 참된 제자로 거듭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