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와 위로 사이에서 머뭇거리다

by God'sShadow posted Aug 2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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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묵상 이사야 9:8~21

 

이사야 9:13 새번역

13 그런데도 이 백성은 그들을 치신 분에게로 돌아오지 않았고, 만군의 주님을 찾지도 않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회개가 선포된다.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메시지에 듣는 이도 선포하는 이도 괴롭다.

지겨우리만큼...

그만큼 우리가 마음이 굳어 있다는 바를 인정하지 않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계속되는 회개에 지겹다.

 

그래도 다시 선포해야 한다.

그게 목사니까...

달라지지 않아도, 변화가 없어도...

그게 목사니까..

 

설교 혹은 강의를 준비하고 준비한 것을 풀어내는 동안

나는 늘 현실과 희망 사이에서 엉거주춤 서 있다.

 

현실은 위로를 요청하고

희망은 변화를 위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나는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 대한 인식의 변화 없이

긍정적 내일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식의 변화가 없으면 내일은 오늘의 반복일 뿐이다.

 

그러나 인식의 변화는 매우 지겹고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는,

때로는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대다수의 신앙인들은 현실의 위로를 원한다.

살아내야 하는 삶이 버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로 또한 우리에게는 소중한 삶의 편린들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위로가 내일을 살기 위한 힘이 되지 못하고,

잠시 잠깐의 만족에 그치고 만다면,

또다시 제자리 걸음하게 하는 자기 위안에 그치고 만다면,

나는 차라리 위로보다는 회개를 택하겠다.

왜냐하면, 위로가 현실에 급급한 나머지 일시방편에 그치고 만다면,

차라리 그것 보다는 아프더라도 내일을 위한 회개에 내 삶을 던지겠다.

 

변화를 원한다면

스스로의 틀을 깨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터널을 통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상처투성이인 나는 일상의 삶이 얼마나 버거운지 잘 안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안다.

 

그러나 상심과 위로의 무한 반복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식의 변화라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나는 자주 이 둘 사이에서 엉거주춤 서 있다.

그래서 희망이란, 늘 고통스럽고, 나를 머뭇거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