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붙들지 마라 Noli me tangere

by God'sShadow posted Apr 18, 2020

요한복음 20:11-18은 빈 무덤 앞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그들 사이의 짧은 대화는 나를 붙들지 마라(17)”는 신비로운 말에서 절정에 이른다. Noli me tangere는 라틴어 역이며 성서 그림의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고 있어 많은 화가들이 이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우리 말 성경들은 이 말씀을 나를 붙들지 마라”, “붙잡지 마라”, “손을 대지 마라”, “나를 만지지 마시오등으로 옮기고 있다. 영어성경도 “do not touch me”, “do not hold on to me”, “do not approach me” 등이다. 원래 그리스어 성경에는 Μή μου πτου(mê mou haptou)로 되어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 후 삼일 후 주일 이른 새벽 아직 어두울 때에 무덤을 찾은 첫 사람이다(20:1). 그녀는 무덤이 비어있음을 발견한다. 무덤 어귀를 막아놓았던 돌이 제자리에 있지 않고 이미 옮겨져 있었다. 그녀는 가까이에 있던 베드로와 요한에게 황급히 가서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한다. 제자들은 와서 이 사실을 확인하고 그 자리를 떠났지만 마리아는 차마 떠나지 못하고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울다가 몸을 굽혀서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을 입은 천사 둘이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의 시신이 놓여 있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다른 한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여자여, 왜 우느냐?" 마리아가 대답하였다. "누가 우리 주님을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섰을 때에, 그 마리아는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지만, 그가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야!’하고 이름을 불러줬을 때 비로소 마리아는 그가 주님인 것을 알아보고 다가갔다.

예수의 죽음으로 인한 마리아의 상실감과 애도, 부활의 만남과 부활한자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그분의 사라짐과 새로운 사명의 도래의 경험은 부활절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진정한 경험이 아닐까. 마리아의 부활절 체험은 새로운 생명을 향해 돌아섬으로 집약할 수 있지 않은가. 요한복음의 부활절 본문은 마리아의 행위에서 여러 번 돌아섬에 주목한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줄 알지 못하더라 (she turned around and saw Jesus standing there)”(14)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Jesus said to her, "Mary." She turned toward him)(16)

 

돌이킴/돌아섬은 요한복음의 문학적 구조와, 신학적 구조를 이루는 핵심적인 용어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은 어두움이 빛으로 turn하며, 죽음이 생명으로 turn하기 위함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주인공인 본 부활절 본문은 몇 단계로 마리아가 turn하는 장면이 있다. 첫째, 마리아가 돌이켜 고통과 죽음을 본다.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가 떠난 후에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11). 마리아는 돌아서 홀로 고통과 주검을 먼저 살펴보고 있다. 남성 제자들, 베드로와 요한이 떠나고 막달라 마리아 여자 홀로 있는 자리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냥 집으로 돌아갔지만 마리아는 무덤을 지키며, 무덤 안으로 몸을 구푸려 들여다보면서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울고 있다. 고통과 상처와 슬픔과 죽음을 먼저 살펴보는 마음, 들여다보는 마음이 중요하다.

 

둘째, 마리아는 돌아서 살아계신 분(the living One)을 본다. 고통과 죽음에 대한 참여가 돌이켜 살아계신 주님을 보게 한다. 상처, 특히 고통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의 흔적으로 남는다. 그러나 그것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16)

 

마리아가 몸을 돌리는 순간 그녀는 슬픔과 고통의 문을 통과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기쁨과 희망의 뜰로 들어가고 있다. 예수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마리아는 잃었던 보물을 그렇게 오랫동안 찾다가 마침내 발견한 사람처럼 응답한다. 랍오니여(스승님!)

 

셋째, 마리아는 공동체를 향해 돌아선다. 예수님 죽음에서 삶으로 부활한 것을 알고 깨달았지만, “나를 아직 만지지 말라”, 아직 예수님을 만질 수가 없어. 이 때 마리아는 공동체를 향해 돌아서다. “내가 부활한 주님을 보았다”(18) 라고 제자들에게 가서 증언한다.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그분을 잡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향해, 공동체를 향해, 세상을 향해, 새로운 생명을 향해 돌아선다. 코로나 19로 세계가 강요된 격리와 고립,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의 시-공간을 살아야 하는 이 시기에 예수님과 마리아 사이의 아슬아슬한 거리두기로부터 새로운 공동체의 탄생을 위한 예표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심광섭 교수(전 감신대 교수, 조직신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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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아노(Vecellio Tiziano) , Noli me tangere, 1512. 109 x 91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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