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아야 별이 보인다

by God'sShadow posted Sep 05, 2020

눈을 감아야 별이 보인다

 

별을 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작은 개울에 떼를 지어 움직이는 송사리를 발견하려면 한동안 물속을 들여다 봐야 하는 것처럼, 얼마간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눈을 뜨고 별을 찾기 전에 눈을 감아야 한다.

별이 한두 개밖에 보이지 않더라도, 가만히 기다리며 별빛에 집중하면 어느 순간,

주변의 별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 조승현의 고작 혜성 같은 걱정입니다중에서 -

 

 

열기가 식지 않아 자고 깨기를 반복하던 여름도, 어제는 오랜만에 선선한 바람에 몸을 맡겨 꿀잠을 잘 수 있었고, 50일이 넘는 장마기간이 지나고, 태풍이 지난 오늘 밤에는 그래도 제법 하늘에 별이 보입니다. 이제 정말 가을이 오나 봅니다.

 

별 보기도 기술입니다.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눈을 뜨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고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그 사이 마치 별이 태어나기라도 한 듯, 안 보이던 별이 선명히 보이고 저 멀리 떨어진 별이 눈앞으로 바짝 다가옵니다. 사랑과 믿음도 별과 같습니다. 조용히 눈을 감는 시간,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는 내 안에 계신 주님을 더 깊이 만나는 기다림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이 시간이 언제 끝날지 보채며 떼쓰기 보다, 이 시간을 좀 더 의미있게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의미 없는 고난은 없다 하지만, 고난 중에 의미를 찾는 일은 여간 어려운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고난을 통해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의미들을 새롭게 발견해 나가는 깨어 있음이 필요합니다.

 

 

의미요법(Logotherapy)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자들을 연구했던 빅터 프랭클이라는 사람이 만든 이론입니다. 사람은 의미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의미를 붙들고 있는 한, 살아 남을 수 있다! 그가 지금 어려운 이 시대를 견디고 있는 우리에게 들려주는 한 구절이 있습니다.

 

"시련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명백하게 밝혀지면서 우리는 수용소 안에서 자행되는 폭력을 무시하거나 거짓 상상을 하거나 억지로 만들어낸 낙관적인 생각을 즐기는 것으로 그것이 주는 고통을 감소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시련으로부터 등을 돌리기를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시련 속에 무언가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릴케가 <우리가 완수해야할 시련이 그 얼마인고!>라는 시를 쓴 것도 아마 시련 속에 이런 기회가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릴케는 마치 작업을 완수한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이 시련을 완수한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완수해야할 시련이 너무나 많았다. 따라서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나약해지지 않고, 남몰래 눈물 흘리는 일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눈물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눈물은 그 사람이 엄청난 용기, 즉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것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들은 부끄러워하면서 자기가 운 적이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한번은 부종 때문에 고생하던 동료에게 어떻게 나았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실컷 울어서 내 조직 밖으로 몰아냈지.”"

 

- 빅터 플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140

 

 

기다림의 시간...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별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를 기대하면서, 고난의 의미를 발견하고, 기다림의 의미를 찾아가며 잘 견디어 나가는 9월 한 달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200905.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