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한 나의 그릇

by God'sShadow posted Mar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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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10~22



인생은 만남입니다. 좋은 만남은 좋은 삶을 살게 하고, 그리고 좋은 만남은 또 다른 좋은 만남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인생에 있어서 만남은 그 무엇보다도 참 소중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 최고의 만남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만나야 내 삶을 무엇을 위해 드려야 하는가, 인생의 진정한 주인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고, 또한, 주님을 만나야 비로소 내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내가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깨달을 때, 비로소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프랭크 로저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만났다면, 만난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다면 서로에게 좋은 만남이 되어야 하고,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도록 소개해줘야 합니다. 지난 주,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사울, 오늘은 또 다른 사람과의 복된 만남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가 바로 아나니아라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택한 나의 그릇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만을 가리키는 말씀이 아니라,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기 위해 쓰임 받은 아나니아를 가리키는 말씀이기도 하고, 지금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주님이 택한 그릇으로 쓰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준비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딤후 2:21)

 

1. 기도로 준비하고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다음, 아나니아를 만나기 전까지 기도하는 중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금식하며 기도하던 사울의 기도를 들으셔서 아나니아를 보내주셨고, 또한, 기도하고 있던 아나니아의 기도를 들으시어 복음의 새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일하시고 기도로 사람을 준비시키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기도가 기도로만 끝나고 있지 않습니다. 순종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환상 중에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한 아나니아도 사울에게 가서 도우라는 주님의 명령에는 처음에 머뭇거렸습니다. 사울이 누구며 그까 디메섹에 왜 왔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13-14) 하지만 아나니아는 사울이 주님께서 '택하신 그릇'이라는 말을 듣고 곧바로 주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용서되지 않아도 주님의 뜻이라면 순종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아나니아를 통해 배우는 순종입니다. 이와 같은 순종하는 믿음은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순종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 훈련이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는 순종의 훈련입니다. 기도하기 전과 기도한 후의 내 마음이 달라야 합니다.

 

2. 나를 비워야 쓰임 받는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나니아가 안수할 때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졌다고 했습니다.(18) 재미있는 것은 헬라어 원문을 보면, 비늘이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바울의 눈을 가리고 있었던 수많은 비늘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고, 믿는 사람들을 조롱하고, 말씀을 비웃고, 세상을 다르게 보던 그 비늘 같은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도 바울처럼 끊임없이 우리 눈을 가리우는 비늘을 발견하고 벗어던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비움이자,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고, 주님과 함께 죽는 것입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버린 것이 많을수록 주님이 나를 더 높여 주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늘을 찌를 듯 드높이 자라난 나무는, 반대로 땅 속으로 몇 배나 더 되는 뿌리를 깊이 내리우듯이, 주님의 택한 그릇이 되기 위해선 끊임없이 나를 비우고, 내면이 더욱더 깊어져야 합니다.

 

3. 택한 그릇이 되기 위해 비워진 마음에 주님을 채우시기 바랍니다.(고후 4:7)

 

사울과 아나니아는 둘 다 주님께서 택하신 그릇이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큰 족적을 남긴 바울에 비하면 아니나아는 보잘 것 없는 그릇처럼 보이지만, 주님께서 쓰시는 그릇은 모두 귀한 그릇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 이유는 그릇 안에 채워진 내용물 때문입니다. 그릇이 어떠한가보다 그 그릇에 무엇을 채웠느냐가 중요하듯이, 비움은 채움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채워야 할까요?

1) 오직 예수, 2)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3) 사명. 저는 한 개인에게 있어서 이런 최고의 영광은 없다고 믿습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위해, 영성교회를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라...” 오늘 이 말씀이 우리 모든 영성의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임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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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택한 나의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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