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걸으라

by God'sShadow posted Apr 1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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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8:1~10



십자가는 내가 죽어야 할 십자가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십자가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죽기만 한다면, 반드시 그 십자가를 경험한 이들은 부활도 함께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이 둘은 그래서 뗄려야 뗄 수 없는 축복이자 은총인 것입니다. 오늘 그 은총은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어떤 죽음의 자리이든지, 어떤 절망의 자리이든지, 그 자리 자리마다 십자가가 세워질 때, 바로 그 자리가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이 흘러넘치는 회복의 자리, 축복의 자리로 변화될줄로 믿습니다.

 

신학에서는 흔히 부활에는 세 가지 차원의 부활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의 역사적인 부활입니다. 예수 부활의 두 번째 차원은 그리스도인의 현재적인 부활체험입니다. 예수 부활의 세 번째 차원은 미래적인 부활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특별히 현재적 부활에 주목하려고 합니다. 2천년 전, 그 과거의 부활이 아니라, 또 장차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게 될 미래적 부활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그 부활을 지금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가, 어떻게 하면 내 삶 속에서 주님의 부활하심을 체험할 수 있을까...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처럼 수많은 핍박과 어려움과 때때로 드는 의심과 회의를 극복하고 여전히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만드는 그 힘은 무엇일까... 앞으로 가도 당신을 찾을 수 없고, 옆을 보아도 안계신 것 같은 당신이 그래도 내 가는 길을 당신만이 아신다고, 어떻게 하면 그 욥처럼 나도 그 분을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무엇이 그들의 삶을 그 길 위에 세울 수 있었을까...

 

뿐입니까? 무엇이 엠마오로 가던 두 명의 제자들의 발걸음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했을까. 무엇이 숨어 있던 제자들로 하여금 주님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수많은 교회를 세웠으며, 지금도 수많은 목회자들과 이 땅의 성도들로 하여금 어리석어 보이고, 힘겹게 보여도, 이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게 하는 것일까...제 관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부활을 걷는다는 말이 가능할까요? ‘부활을 걷는다.’말은 부활을 단순히 관념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부활은 우리 머릿속에 있지 않습니다. 부활은 우리 생각 속에 있는 것만이 아닙니다. 부활은 우리 삶과 부닥치는 사건입니다. 부활은 지금 우리들에게 살아 있는 생생한 체험이요, 지금도 우리 모두를 살게 하는 힘이자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지금도 살아계셔서 내 곁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돌문으로 인봉한다 해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군인들이 지킨다고 해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진리는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 불신앙의 돌을 굴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 그가 곧 부활을 살고, 부활을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희미하지만, 그 때는 밝히 볼 것을 믿으며 걸어가는 것이 부활을 걷는 길입니다.

 

2. 부활을 걸어가는 삶은 부활의 권능으로 사는 삶입니다.

 

오늘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인생의 돌문은 우리 힘으로는 굴릴 수가 없습니다. 부활을 살고 부활을 걷는다는 것은,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무덤에서 걸어 나오고, 절망의 자리에서 떨쳐 일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능력과 권세가 주님에게 있음을 믿고, 이제는 그 능력을 힘입어 내 삶과 가정과 교회와 세상 속에서 그 능력을 선포하며 담대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능력은 오직 주님에게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은 그 절망의 무덤에서, 그 고통의 무덤에서, 그 원망의 무덤에서, 그 실패의 무덤에서 주님의 능력을 믿고 떨쳐 일어나 걸어 나오는 것입니다.

 

3. 부활을 걸어가는 삶은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증인으로 사는 삶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분명히 갈릴리에서 그들을 만나주신다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갈릴리는 내 가정일수도 있고, 내 일터일수도 있고, 내 교회일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 자리가 오늘 우리의 갈릴리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주신다는 것은 어떻게든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붙들고, 주님 뜻대로 살아 보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일상의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를 만나주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어디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동행길을 걷는 바로 그 발걸음 속에서 우리는 주님을 대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고통스럽다 하여도, 이 여정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이 믿음의 길을 멈춰서는 안됩니다. 이제, 갈릴리에서 다시 사명을 붙들고,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은 세상이 너무 왜곡되어 있는 까닭에 십자가의 길을 가는 자에게 어려움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때때로 우리의 확신이 흔들릴만큼 낙심도 오지만, 이제, 다시 부활의 믿음으로, 부활의 권능으로, 부활의 증인으로... 오늘 부활절에 우리는 다시 한번 주님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고전 15: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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